3·1절 특집 <영화, 드라마에 비춰진 독립 운동가들>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는 15,000여 명. 그 중 우리가 아는 인물은 100명도 안 돼요. 오늘은 104주년 3.1절을 맞아 후손들에게 잊혀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해보겠습니다. 영화, 드라마 속에서 비춰지고 낯선 이름이 조금 가깝게 느껴지는 4명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합니다. 1. 독립운동가 손몽규

출처 : 공훈전사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처음에 소개하는 인물은 시인 윤동주(윤·동주)고종의 사촌으로 알려진 독립 운동가”송 꿈 서울대”입니다. 영화”동주”에서도 시인을 꿈꾸는 청년”동주”와 자신의 신념 때문에 주저 없이 행하는 청년”몽규”얘기가 흡입력을 갖고 전개되었습니다. 1917년에 중국 룽징에서 태어난 송·몽규 선생님은 명동 학교와 은혜 진 중학교에서 민족 교육을 받고, 중국 난징의 학생들 훈련소에 입소하는 독립 운동의 뜻을 펼치고 왔습니다. 학생들 훈련소는 백범 김구 선생이 중국 중앙 육군 사관 학교에 입학할 예정인 청년을 수용하기 위해서 만든 곳입니다. 일제 압력으로 학생의 군관 학교 입학이 어려워지자 그는 윤·동주와 연희 전문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문학을 통한 민족 계몽 운동에 앞장 서기로 했어요. 당시 일본은 조선어 말살과 일본어 상용 정책을 전개하고 조선 어문 소멸을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문과 학생들의 자치 조직인 문우회 잡지”문우”의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한글 시를 “문우”에 수록하고 항일 운동을 벌였습니다. 영화”동주”-독립 운동가, 송·몽규

출처 : 영화 ‘동주’ 공식 포스터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1942년에 그는 세계 역사와 문학을 연구하고 조선의 독립을 모색하기 위해 교토제국대학 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교토에서도 그는 윤동주와 함께 자주독립을 위한 민족정신운동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1943년 7월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의 주도 인물로 윤동주와 함께 체포됩니다. 그는 일제의 조선어문 소멸 유도 등 민족 말살 정책을 비판하고 세계의 동정을 얻어 조국 독립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어 옥중 독립한 조국을 보지 못하고 1945년 3월 28세의 나이로 옥중 순국하였습니다. 2. 독립운동가 황기환(애국지사)출처 : 공훈전사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드라마”미스터 선샤인”여러분 보셨습니까? 미스터 선샤인의 유진·초이 역의 모티브가 된 팬·기판 선생님을 두번째의 인물로 소개합니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유진·초이는 조선의 양반 집안 노비이고 다양한 박해를 받고 살면서 니이미 신미양요에서 조선에 들어온 미군 군함에 타고 미국으로 건너 미군 장교가 되고 조선에 돌아오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팬·기판 선생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곳에 의하면, 그는 1886년부터 1887년 동안 평안 남도 순천에서 태어났고 10대 후반의 1904년에 조선을 떠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황 선생님은 미국 유학 중에 미군에 자원 입대하고 제일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제일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에 돌아가지 않고 1919년 프랑스 파리로 옮기면서 파리 강화 회의의 한국 대표부에 합류했습니다. 드라마”미스터 선샤인”-독립 운동가 팬·기판 애국 지사출처 :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공식 포스터그는 1919년 러시아와 북해를 거쳐 영국으로 들어온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영국 정부를 설득해 이들 중 35명을 프랑스로 이주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미국과 영국에서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조율하며 외교 홍보 활동을 해온 그는 1923년 미국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부는 황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습니다. 지난 2월 초 황기환 선생의 유골이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3. 독립운동가 남자현 여사출처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홈페이지출처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홈페이지출처 : 영화 ‘암살’ 공식 포스터1933년 초 여사는 동지 이춘기 등과 만주국 건국일인 3월 1일 행사에 참석할 예정인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2월 29일 거지로 변장해 권총 1정과 탄환 폭탄 등을 몸에 숨기고 하얼빈에서 창춘으로 향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하얼빈 교외를 지나던 중 미행하던 일본영사관 소속 형사에게 붙잡혀 일본영사관 유치장에 감금되었습니다. 여사는 옥중에서 6개월간 가혹한 고문과 옥중생활로 사경에 이르며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1933년 8월 22일 향년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출처: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 운동사 연구소 홈페이지/인터넷 우체국 홈페이지 드라마”가쿠 시타”영화”밀정 김장 옥”의 실제 인물인 김· 산 옥 의사를 4번째 인물로 소개합니다. 일제의 심장부라 불린 종로 경찰서에 폭탄 투척을 감행, 닛케이 10여명에게 총상을 입히고 신출귀몰한 총기의 솜씨로 다무라 형사 부장을 사살, 수명의 경찰도 중상을 입힌 후 사라진 인물. 당시 일본은 범인의 은신처에 1,0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하고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 범인은 이에 대해서 권총 2개만 갖고 3시간 사투를 벌이면서 닛케이 16명에게 총상을 입히고 마지막 남은 탄환 1발에서 자결하는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김· 산 옥 의사예요. 올해는 목숨을 걸고 침체에 빠진 독립 운동을 살린 김· 산 옥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기도 합니다. 1890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김· 산 옥 의사는 형제들과 돈을 모으고 히가시 몽젱 영덕 철물점을 창업하고 청년 사업가로 성장했는데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동업 조합”을 결성하고 일본 상권에 대항하고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 운동에 전력을 다한 인물입니다. 드라마”각시탈”영화”밀정”-독립 운동가인 김· 산 옥 의사출처:드라마”각시탈”영화”밀정”공식 포스터 그는 20세로 히가시 고야 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회 계도와 민족 교육에 헌신하고 3·1독립 운동 이후 윤 이익 중(윤·익쥬은)신 화수(신·한화()정 유키교(정·솔교)등 동지와 함께 비밀 결사 조직인 혁신단을 조직하는 비밀 신문”혁신 공보”을 발행하고 독립 정신을 고취했습니다. 1920년에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 서원의 가나 히가시 아츠(김·돈 쓴)씨와 일본 제국을 직접 타격하는 암살단을 조직하고 일본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의 의열 투쟁을 계획하고 일본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고 1920년 10월 상하이에 망명, 김구(김·구)씨와 조 소앙(조·서울 안)씨 등 임시 정보 요인과 교류하면서 의열단에 가입한 의열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1923년 서울 한복판에서 군경 1,000여명과 대치한 일명”일대와 서울시가 전투”에서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라는 결심을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 걸음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는 일본이 한민족의 의지를 두려워하게 하고 한국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과 결의를 다시 다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은 제104주년 3·1절입니다. 3·1절을 맞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독립 운동가들을 잊지 말고 꼭 명심하세요. 감사합니다。출처 : 드라마 각시탈, 영화 밀정의 공식 포스터, 그는 스무 살에 동흥야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회계몽과 민족교육에 헌신했고 31운동 이후 윤익중 신화수 정설교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혁신단을 조직하고 비밀신문 혁신공보를 발행해 독립정신을 고취했습니다. 1920년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 김동순과 일제를 직접 타격하는 암살단을 조직하여 일본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 의열투쟁을 계획하였으며, 일본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1920년 10월 상하이로 망명, 김구와 조소앙 등 임시 정보요인들과 교류하면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의열투쟁을 계속하였습니다. 1923년 서울 한복판에서 군경 1,000여 명과 대치했던 일명 ‘일대천 서울시가 전투’에서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걸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는 일본이 한민족의 의기를 두려워하게 하고 우리 민족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과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제104주년 31절입니다. 3.1절을 맞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출처 : 드라마 각시탈, 영화 밀정의 공식 포스터, 그는 스무 살에 동흥야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회계몽과 민족교육에 헌신했고 31운동 이후 윤익중 신화수 정설교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혁신단을 조직하고 비밀신문 혁신공보를 발행해 독립정신을 고취했습니다. 1920년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 김동순과 일제를 직접 타격하는 암살단을 조직하여 일본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 의열투쟁을 계획하였으며, 일본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1920년 10월 상하이로 망명, 김구와 조소앙 등 임시 정보요인들과 교류하면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의열투쟁을 계속하였습니다. 1923년 서울 한복판에서 군경 1,000여 명과 대치했던 일명 ‘일대천 서울시가 전투’에서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걸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는 일본이 한민족의 의기를 두려워하게 하고 우리 민족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과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제104주년 31절입니다. 3.1절을 맞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출처 : 드라마 각시탈, 영화 밀정의 공식 포스터, 그는 스무 살에 동흥야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회계몽과 민족교육에 헌신했고 31운동 이후 윤익중 신화수 정설교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혁신단을 조직하고 비밀신문 혁신공보를 발행해 독립정신을 고취했습니다. 1920년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 김동순과 일제를 직접 타격하는 암살단을 조직하여 일본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 의열투쟁을 계획하였으며, 일본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1920년 10월 상하이로 망명, 김구와 조소앙 등 임시 정보요인들과 교류하면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의열투쟁을 계속하였습니다. 1923년 서울 한복판에서 군경 1,000여 명과 대치했던 일명 ‘일대천 서울시가 전투’에서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걸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는 일본이 한민족의 의기를 두려워하게 하고 우리 민족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과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제104주년 31절입니다. 3.1절을 맞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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